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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12 March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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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번역하는 베이루트의 노파와 게이 작가: 라비 알라메딘의 '불필요한 여자' 심층 분석

내전의 상흔 속에서 기억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소설

슬픔을 번역하는 베이루트의 노파와 게이 작가: 라비 알라메딘의 '불필요한 여자' 심층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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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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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이크바리 뉴스 통신사

슬픔을 번역하는 베이루트의 노파와 게이 작가: 라비 알라메딘의 '불필요한 여자' 심층 분석

레바논 문학은 그 깊이와 복잡성으로 인해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주목받고 있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적인 에세이부터 아민 말루프의 웅장한 서사에 이르기까지, 레바논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격동의 역사와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탐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21세기 현대 레바논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삶의 참혹함과 비관주의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조국을 뒤로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말루프, 캐나다로 떠난 와즈디 무아와드와 같은 작가들에게 장 폴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라는 명제는 단순한 철학적 사변을 넘어, 생생한 경험이자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바논 출신 작가 라비 알라메딘(67세)의 최근 국내에 소개된 장편 소설 '불필요한 여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공학을 전공하다 뒤늦게 화가이자 작가로 데뷔한 그의 작품은 아랍의 비극적인 갈등과 분쟁의 참상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여자'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작가 자신의 복합적인 정체성과 깊이 연결됩니다. 레바논 내전을 피해 1975년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에 정착한 알라메딘은 '변방성'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의 존재를 설명합니다. 그는 “어느 문화권에서든 나는 타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아랍권 국가 출신의 비백인 무신론자로서 겪는 소외감을 토로합니다. 또한, 소설 속에서 “짝이 없는 사람, 혹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환대한 적이 없다”고 묘사되는 레바논의 도시에서 게이로서 성장한 경험은 그의 정체성을 더욱 다층적으로 만듭니다. 만약 작가의 배경 정보 없이 이 소설을 접했다면, 많은 독자들이 주인공 알리야 살레의 섬세한 심리 묘사 때문에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오해 가능성 자체가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더욱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알리야 살레는 2010년대 초, 일흔두 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지옥” 삼아 은둔하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작품은 ‘기억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서사 구조를 통해 주인공의 심리를 직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알리야는 “기억은 나를 여지없이 폭로한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기억은 곧 고통의 흐름과 연결됩니다. 그녀는 시를 빌려 기억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기억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희구합니다.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스의 시 구절을 인용하며 “기억이여, 그대에게 간청했습니다 / 나의 가장 충실한 조수가 되어 달라고”라고 읊조리는 알리야의 모습은,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고독 속에서 길을 찾는 인간의 절박함을 보여줍니다.

알리야의 삶은 이혼,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 깊은 상처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열여섯 살에 처음 결혼했다가 네 해 만에 이혼당하고 홀로 살아온 그녀는, 어머니와 친척들로부터 재혼 압박과 재산 분쟁에 시달립니다. 과거 사랑했던, 그러나 이제는 ‘검은 구월단’의 고문관이 되어버린 청년과의 기억은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합니다. 이러한 기억들은 마치 문학 작품의 구절처럼 그녀의 삶을 얽매지만, 동시에 그녀가 현재를 이해하는 틀이 되기도 합니다. 알리야가 일생 동안 가장 아꼈던 옛 동서 한나는 “자신의 삶에 포함하고 싶어 했던 첫번째 사람”이었지만, 쉰 살이 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한나와 과거의 연인에 대한 기억은 알리야를 ‘샛길’로 빠지게 하지만, 그 ‘샛길’ 속에서 오히려 그녀의 진면모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무능력하다고 여겨졌던 남편에 대한 기억, 혹은 레바논 내전이 발발하던 1975년 총 맞아 죽은 이웃에 대한 소문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기억들은 ‘본류’와 ‘지류’가 따로 없이 뒤섞여 알리야의 삶을 구성합니다.

특히, 소설 속 알리야의 남편이 사용한 ‘트리플 탈라크’(세 번의 이혼 선언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관습) 이후 그녀는 “그 무엇보다 짜릿한 선언”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이는 알리야가 겪었던 억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파란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한 알리야는 자조와 자기애가 뒤섞인 채 비관적이면서도 연민을 구하지 않는 독특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집을 지키는 알리야’와 ‘번역하는 알리야’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표상될 수 있습니다.

알리야는 평생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열흘 이상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내전을 피해 도시를 떠난 엘리트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그녀는 폭격 속에서도 낡은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대피하지 않으며, 빈집을 노리는 외부인과 집을 빼앗으려는 형제들에 맞서 소총까지 구해둡니다. 이러한 알리야의 고립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녀는 스물두 살 이후 매년 새해 첫날, 새로운 문학 작품을 골라 아랍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지만, 출간이 목적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서입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 나오는 “탁월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오로지 이것,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기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 무익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구절을 알리야가 인용할 때, 우리는 그녀가 겪어온 혹독한 현실과 그 속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37편의 번역 원고는 상자에 보관되어 왔으며, 이는 무너진 도시 위에 알리야가 쌓아 올린 자신만의 세계입니다.

알리야는 1980년대 후반, 도시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를 회고하며 “새 음반을 사는 날에는 주변이 온통 전쟁이고 혼란이 지배할지언정 나는 승자였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말에 오류가 있을지언정, 분명한 것은 모든 기억의 번역자는 자기 자신이며, 그 기억은 때로 고통을 벼려내 오늘과 내일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번역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기억 또한 현재화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소설 말미, 수도관이 터져 소중히 보관해 온 번역 원고가 젖어버리고 절규하는 알리야를 일으켜 세우는 이들은 바로 아파트의 늙은 ‘마녀들’입니다. 그들은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을 각인시켰던 존재들이지만, 결국 서로의 공간을 지키며 살아온 ‘타인’들이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알리야는 다시 새로운 번역 작품을 고르며, 다음 해에도 ‘불필요한 여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이 소설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복잡한 정체성을 ‘번역’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깊이 있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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